청년 로컬크리에이터 _ 이연지
“관찰하고, 가꾸고, 전하는 사람”
AI 시대에 이연지가 금천구에서 실험하는 ‘몸의 무대’
이연지

금천구 홀림의 작은 무대.
아무 장르도, 아무 주제도 정해지지 않은 채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간.
금천구 홀림에서 만난 기획자 이연지 님은
이번 프로그램을 “정해진 틀이 없는 무대 실험”이라고 소개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칙도,
어떤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없다.
그저 참여자들의 말과 몸짓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면,
그 흐름이 장면이 되고, 장면들이 모여 공연의 형태를 띤다.
아래는 그녀와 나눈 깊은 대화를 정리한 기록이다.
“저는 관찰하고, 편집하고, 전달하는 사람이에요.”
Q.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저는 ‘관찰자–편집자–전달자’라고 생각해요.
문득 시선이 머물거나 마음 닿는 것이 생기면, 그 주변을 맴돌며 고요히 바라보는것,
그것이 저의 첫번째 일인 것 같아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거리가 떠오르면,
어떤 언어와 형태로 전활지 오래 고민하여 하나의 장면으로 다듬어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기획자로서 갖고 있는 태도가 한 문장에 담겼다.
“이번엔 완전히 다르게. 정해진 주제 없이 시작하는 실험이에요.”
세팅만 되어 있는 무대.
주제도, 대본도 없는 ‘완전한 여백’.
Q. 이번 실험은 기존의 기획 방식과 무엇이 가장 다른가요?
“선명한 메시지를 먼저 정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처음 무대를 발견했을 때 ‘이번엔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제도, 형태도 정하지 않고,
참여자들의 이야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번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백으로부터 길어올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 자체가 실험이고 도전이다.
“제가 생각하는 지역민은… 지리보다 감각의 공동체예요.”
Q. 신청서에서 지역과의 연결을 강조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지역민의 의미는요..)
단순히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아요.
저는 때때로 비슷한 감각, 언어, 문화, 삶의 걸음을 가진 분들이 모인 공동체를 지역민이라고 느껴요.
그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번 실험에 담겨 있어요.”

“이번 무대의 주제는 참여자와 관객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핵심이에요.”
무대 위에 어떤 말과 몸짓이 올라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불확실함이 곧 실험이다.
Q. 이번 무대에서 가장 실험적인 지점은 무엇인가요?
“주제를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참여자들의 이야기와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주제가 떠오르도록 내맡기는 것.
그 불명확함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본질이기도 해요.”

“진정성 있는 소통은… 결국 ‘시간’으로 증명되는 것 같아요.”
관계와 신뢰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의 기반은 2년 동안 쌓인 느슨한 우정이다.
Q. 연지 님이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소통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참여자분들은 모두 제가 2년 이상 혹은 2년 남짓 관계를 이어온 분들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느슨한 삶의 동료라고 생각하는데요.
비록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삶의 지향점과 방향이 닮은 것을 느껴요.
서로의 존재를 아는 것 만으로도 든든한 연대감이 생기고요.
그동안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정으로, 무대의 참가자로서, 관객으로서 기꺼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이번 실험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AI 시대라 해도… 몸의 장면은 대체되지 않기를 바라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몸의 떨림’은 복제되지 않는다.
무대는 여전히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Q. AI가 빠르게 일과 창작을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이 무대가 혼자 일하는 프리워커들에게 어떤 ‘업의 실험실’ 또는 ‘안전한 공유 공간’이 될 수 있을까요?
“AI가 많은 일을 대신해주면서
프리워커들은 더더욱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 필요한 건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한 사람의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은 이어졌다.
“프리워커는 대부분 혼자 일하잖아요.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험해요.
그래서 나의 방향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비교적 적은 것 같아요.
이 무대는 홀로 걷는 고독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 곳곳의 동료를 확인하고 느슨하게 연결되는 자리이길 바라요.
나의 고유한 말과 몸짓이 누군가에게 목격되고,
그 안에서 작은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서로가 그것을 응원하는 오두막 같은 공간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차이를 짚었다.
“AI는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까지 인간의 몸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믿어요.
몸의 떨림, 호흡, 시선처럼
공간 안에서 오가는 미세한 감각들은 대체되지 않기를 바라요.
이 무대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 고유의 불완전한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눈에 보이는 흔적을 꼭 남길 필요는 없어요.”
겉으로 남는 결과보다,
마음속에 쌓이는 감각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Q. 이 프로그램이 금천구에 남길 가치는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형태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각자의 마음속에 잠시 머무르는 것으로 충분해요.”
“참여자들이 느끼길 바라는 건 작은 자립감과 다정한 연대감이에요.”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는 감각.
그 작은 자립이 누군가의 다음 걸음을 만든다.
Q. 참여자들이 어떤 경험을 가져가길 바라나요?
“어떤 감정을 반드시 느끼길 바라진 않아요.
그저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작은 자립감. 그리고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연대감이랄까요.
그런데 사실 이런 것보단, 각자 바라고 기대했던 바를 충족해가는 것. 그것이 가장 기쁜일이에요.
이번 무대 실험은
정해진 형식 없이,
참여자의 언어로부터 이야기가 피어나는 자리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사람의 몸과 감각이 만드는 장면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절실하다.
이연지 님이 만든 이 작은 무대는
프리워커들에게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인간의 고유한 감각을 확인해보는 ‘안전한 실험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