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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 돋보기#3 ‘안양천 만남(아님)의 광장(아님)’

금천 돋보기#3

이번 글에는 조금 직관적인 표현과 복지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 있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 장소는 안양천 만남(아님)의 광장(아님)’이다. 오래전부터 주말에 안양천을 산책할 때면, 한 정자에 어르신들이 모여 계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술 한 잔 없이 어르신들이 모여 두는 장기와 바둑. 이거 완전 클리셰 아닌가?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봐서 그런지, ‘이런 곳에 숨은 고수가 계시지는 않을까? 날 제자로 거두어 키워주시고, 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멋지게 복수해 주는 그런 스토리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마침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기에, 이번 기회에 여러 목적을 이루고자 이곳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새로 알아낸 사실은 바둑 구역과 장기 구역이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쿰척쿰척역을 통해 안양천으로 나가 광명으로 향하는 다리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바둑, 왼쪽은 장기 구역이다.

 

바둑 공간이 더 크고 깔끔한 것을 보니 최근 공사를 진행하면서 신설된 듯했다. 두 곳을 모두 둘러본 뒤, 장기만 둘 줄 아는 나는 자연스럽게 장기 구역으로 향했다.

 

4개의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깜빡이를 켜듯 살살 틈새로 끼어들었다. 이기고 계신 분 중 너스레를 떨고 계신 분 옆에 앉아 수줍게 인사를 드리고 한 경기를 관전하며 대화를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물꼬를 트지 못했다.

 

그러던 중 주변을 살피다 보니, 누가 봐도 왕이 될 관상이신 분이 따로 앉아 현장을 유유히 지휘하고 계셨다. ‘이 분이다싶어 곁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곳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상당히 고민했다. 고심 끝에 나온 첫 질문은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하고 계신지는 눈으로도 뻔히 보인다.

 

하지만 그게 진짜 궁금한 게 아니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는데, 시냅스가 꼬이는 바람에 이상한 질문이 나가버렸다. 대답은 당연히 노인네들 모여서 장기 두는 곳이지였다.

 

이곳에는 주로 일을 쉬시는 60~80대 어르신들이 오시며, 주로 모이는 시간은 점심 식사 이후부터 오후 4~5시까지라고 하셨다. 물론 평일에도 모이신다.

 

대화 도중 의자가 없다라는 화제가 던져졌다. “내가 창고에서 가져온 가벼운 게 없어졌다”, “밤에 어떤 놈이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갔다라며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왕관(왕이 될 관상)’ 어르신도 이거 쓸 만한 것들만 쏙 가져가는 놈이 있어라며 거침없이 합류하셨고, “이래서 좋은 거나 가벼운 건 두면 안 돼. 내 창고를 한 번 뒤져볼게라는 말로 2분간의 뜨거운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대화 분위기가 너무 친근하고, 새로 오시는 분들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누시길래 원래 다 알고 지내시는 사이인지 여쭤보았다. 모두 아는 사이라고 하셨는데,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조금씩 달라 흥미로웠다. 영감, 사장, 형님, ~씨 등 다양했는데 친근함의 정도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어서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모두 금천구 주민이신지 여쭤보았다. 대부분 금천구민이지만 관악, 용산, 안양에서 원정을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했다. “, 여기까지 원정을 오실 정도면 장기를 엄청 잘 두시는 분이 계신가 보네요?” 하고 물으니, “아니, 그냥 와라는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사람이 미래다.

 

다음으로는 조금 난처할 수 있는 질문을 드렸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운데, 매일 오시던 분이 안 오시면 서로 연락을 해보시는지 여쭸다. 그러자 그러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모두의 연락처를 아는 건 아니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연락처를 알고 있으며, 안 보이면 걱정은 되지만 2~3일 정도는 무슨 일 있겠지하고 넘어가고, 그 이상 길어지면 물어물어 소식을 들으신다고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열차가 끊임없이 지나다녀 거의 BGM처럼 들릴 지경이 되자,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노인회관이나 센터에 가지 않고 야외인 이곳에 모이시는지 여쭸다.

거긴 답답해.”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속 뜻이 온전히 전달되었다. 자유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지 않던가. 복지센터 같은 곳은 요구하는 규칙도 있을 것이고, 사진도 찍혀야 하고,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야 할 텐데, 그런 절차가 맞지 않는 분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일 터였다.

 

이때부터 나는 이곳을 어르신들의 만남의 광장이자 사랑방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공간은 누가 관리하는지, 의자와 테이블, 장기판은 누가 가져온 건지, 구청에서도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등을 추가로 여쭤보았다.

 

공간을 따로 관리하는 주체는 없고, 여기 있는 모든 기물은 어르신들이 직접 가져오신 것이라고 했다. 구청에서도 이곳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딱히 지원을 해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아까 의자 도둑에 열이 받으셨던 왕관 어르신은 여기 나무 몇 개 대서 문 좀 달아주고 에어컨 하나만 설치해 주면 좋은데, 그거 얼마 안 하는데 좀 해주지라며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시설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공간이 아니기에 정식 쉼터가 된다면 정자 하나를 빼앗겼다라고 느낄 다른 구민도 분명 계실 터였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선뜻 지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확신이 마음속에 들었지만, 겉으로는 그러게요,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처럼 만들어지면 정말 좋겠네요라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러한 생각 끝에, “저도 나중에 여기 장기 두러 와도 될까요?”라고 여쭤보았다. 흔쾌히 된다고 하셨지만, 어르신들만의 아지트 색채가 강해 타인이 선뜻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특히 저녁에 궁금해서 혼자 기웃거리다가는 도둑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 혼자는 못 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청에서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혹시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는지도 여쭤보았다. 예전에 이곳에서 담배를 태우시는 어르신들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어서, 지금은 절대 금연하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구민들이 지나가는 통행로를 막지 않도록 인도 양쪽 가장자리에서만 장기를 둔다고 하셨다.

 

바로 그때, 뒤편에서 에이, 한 수만 물러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신호탄으로 주변 어르신들 간에 열띤 토의가 벌어졌고, 결국 세 수 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합의를 본 뒤 경기가 재개되었다. 물론 나와 왕관 어르신도 그 토의에 슬그머니 합류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에 섞인 김에 이곳의 룰에 대해 여쭤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훈수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설명해 주신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곳은 그야말로 즐겜러(즐기는 게이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훈수와 물러주기는 당연히 가능하고, 사실상 그걸 하러 오시는 듯했다. 장기를 잘 못 두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룰을 잘 몰라도 훈수는 둘 수 있는 법 아니겠는가.

 

오직 즐기기 위한 공간이기에 내기나 대회 같은 건 없다. 다만 실력이 비슷해야 더 재미있기 때문에 구역별로 하하수’, ‘하수’, ‘중수존이 나뉘어 있다고 하셨다. 원래는 하수, 중수, 고수존으로 나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여쭙자, “고수는 여기에 없어. 그런 사람은 탑골공원에나 있겠지라며 우문현답을 내놓으셨다.

 

마지막으로 왕관 어르신 개인에 대해 여쭤보았다. 금천구에 40년 동안 사셨지만, 집에서는 거의 잠만 주무셨기에 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셨다. 그래도 동네 맛집 하나만 알려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강강술래 옆에 있는 손두부 집을 흔쾌히 추천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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