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은 '금천'
혼자여도 괜찮은 '금천'
3년 전, 이제야 막 신입의 티를 벗으며 입성한 금천은 내게는 한없이 낯설기만 한 동네였다.
서울이라기에는 어딘가 친숙한 고향의 느낌이 물씬 들고, 또 고향의 느낌이라기에는 도시화가 되어 있던 곳. 이도저도 아닌 묘한 기분으로 입성한 금천은 새삼 '내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었다.
그저 직장까지 도보로 다니고 싶어 이동해 왔지만, 도보로도 편도 30분이 걸리는 애매한 거리. 버스로도 30분이 걸리니 도보를 택했지만, 여름과 겨울의 거리를 거닐며 드는 생각은 언제나 후회였다. 차라리 완전히 멀어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아주 가까워 코앞이 직장이었다면. 이런 생각이 무수히 드는 나날이었다. 금천에서의 첫 1년은 그렇게 후회와 걱정, 낯선 거리에 대한 두려움에 허덕이며 보낸 시간이었다. 그때는 주변에 무엇이 있고, 혼자 사는 사람이 뭘하며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던 때였다. 돌이켜보면 정말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무수히 길었던 나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후회만 가득한 나날을 보내던 내가 조금씩 이 동네가 좋아지게 된 계기는 2년째가 되어서였다. 내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차라리 이 동네를 떠나서 다른 곳에서 다녀야지, 생각하며 남은 1년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내게 1인 가족센터와 청춘삘딩 프로그램이 눈에 띈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금천구 거주 청년들은 잘 알수도 있겠다. 혼자 사는 사람들, 청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업,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기관이라고 간략히 설명할 수 있는 그 기관들은 내게 '혼자'여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해준 곳이다.
처음에는 그저 금천구 전입신고자에게 제공되는 상품권 지급 사업을 통해 1인 가족센터를 눈에 익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자조 모임, 경제 교육, 요리교실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참여하게 되고 조금씩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는 시간들을 줄이게 되었다. 집보단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차 늘려가고, 하루를 다양한 일정으로 채우며 매일이 기대되는 나날이 되기 시작했다.
혼자여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스킬들을 배우는 것이 그곳에서의 내 결실이었다면, 청춘삘딩은 연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도 없어 외로웠던 나의 내면을 어루만져준 곳이었다.
서울에서 보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이 서울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 친구들이 있고, 가족이 있었다.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어도 서울에 친구가 있고, 자신이 놀고 싶을 때 어울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취업에 떠밀리듯 서울로 올라온 나로선 결코 만들 수 없는 관계였다.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고 시작된 타지생활은 주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놀고, 어디로 가자며 약속을 잡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만들고 고독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전화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나의 현재 처지와 너무 달라서 서글픈 마음도 있었다.
삶이란 언제나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고, 하고픈 것만을 행하며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말이다. 그런 마음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또다시 무기력해지는 심신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청춘삘딩의 노란식탁을 가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통'을 목적으로 식사를 함께하는 모임이라길래 흥미가 생겼었다. 회사 사람들 외엔 말할 사람이 없는 내게 낯선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여한 그 프로그램에선 성별도, 나이도 다른 청년들이 어울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자신의 경험,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여기서 누군가와 꼭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친절하지도, 과하게 친밀하게 굴지도 않았다. 처음보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이 시간은 하루의 마무리에 즐거움을 불어넣었다.
이후로는 초록식탁 등의 다른 프로그램들에도 기회가 된다면 참여를 하게 되었고, 그 선택들은 결코 후회가 들지 않는 만족스러운 선택이 되었다. 혼자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청년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주변에 가득 있었다. 모르고 지쳐버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 살았던 시에서는 알지도, 참여할 기회도 없었는데 금천구에선 자꾸 뭘 그렇게 바쁘게 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차고 넘쳤다. 오직 나만이, 혼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이토록 많았음에 감사하기도, 행복하기도 한 순간들이 지속되고 있다.
외로운 1인 가구. 혼자여서 심심할 사람. 나에게 건네지던 이런 말들은 이제 즐겁게 사는 1인 가구, 바쁘게 다양한 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변했다. 금천구에서 살게 된 이 3년, 이 순간들이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하루를 돌이켜보며 생각한다. 아, 여긴 혼자여서 다행인 동네구나. 혼자여도 즐기며 살 수 있는 동네구나.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은' 동네구나. 이러한 생각들이 오늘도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동네 금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