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의 다리와 지밸리
작년, 서울에 다시 올라오며 내 보금자리는 회사와 가까운 금천구 가산동의 한 오피스텔이 되었다. 주변에는 마트, 병원, 학교보다는 아파트형 공장들과 대로변의 차들로 붐빈다. 특히, 철산로에서 ‘수출의 다리’로 이어지는 곳은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길이 막히기에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서울이 맞긴 맞는구나 깨닫는다.

한국에 있는 물건을 해외에 보내는 일을 하다 보니, 매일매일 다양한 종류의 화물들을 보곤 한다. 보통은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컨테이너를 비롯한 지게차와 화물차량들을 출퇴근길에 보며 금천구에는 도대체 어떤 회사가 있길래 저리도 많은 화물자동차가 다닐까 하는 순전히 나의 궁금증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된다.
금천구는 서울에서 2번째로 작은 구이며, 22만여 명의 인구로 서울에서 4번째로 인구가 적은 곳인데 이에 비해 회사가 많다. (출처: 나무위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써 수출산업 공업 2단지, 3단지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 불리며, 이를 G밸리라고도 한다.
G밸리 2단지에는 수많은 패션 제조업체를 비롯해 3단지에는 IT 및 서비스업종까지 우리나라 2차, 3차 산업이 다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 드는데, 여전히 남아 있는 인쇄소와 그 밖의 제조업체들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건물들은 도시적이라 오묘함이 느껴진다.
G밸리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2단지가 1968년 그리고 3단지가 1973년 공업단지로 조성되었을 때 섬유와 봉제 공장이 제일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의류와 가발, 완구, 그 밖의 소상품들이 전 세계로 수출되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는 「금천 30년사(1995-2025). 1」에 나오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1971년이었는데, 그중 구로공단의 수출액이 1억 달러를 기록했다. 1977년 국가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돌파했을 때도 구로공단이 11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으며, 1980년에도 18.7억 달러를 기록했다. 1970년대 말까지는 여전히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구로공단 제품이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했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이 섬유였던 반면 현재는 반도체, 자동차 및 부품, 석유화학 등 품목이 다변화되었다. 현재 금천구 수출 물품 1등 공신 또한 이에 발맞춰 기계 및 운수장비다.
(사진:금천구_수출_금천구_수출실적, 금천구_수출_금천구_품목별_수출실적) 출처: 서울데이터허브 서울시 수출실적 금천구 2025
현재 G밸리 2, 3단지에는 13,800여 개의 입주기업이 있는데, 업종도 전기·전자, 섬유·의복 등 다양하다. (출처: 금천구청 홈페이지) 그 주변에는 현대아울렛과 마리오아울렛 등 패션단지길이 조성이 돼 있으며, 3단지에는 구로세관 비즈니스 센터도 있는데 금천구를 비롯해 구로구, 영등포구 등을 담당하며 금천구 가산동 가산디지털1로 67에 있다. 물품을 해외로 보낼 때 간이품 등을 제외한 일반적인 화물들은 세관장에게 신고 및 수리돼야 수출할 수 있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에 내 업무와 연관된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앞서 말한 수출의 다리는 1970년대 수출의 가교로 시작하여 1970~80년대 구로공단에서 제조된 제품들이 이 고가차도를 넘어 수출길에 올랐다. 많은 교통량으로 인해 현재 주변에 두산 지하차도를 건설 중이고, 준공 예정일은 2029년 4월이다. (출처: 나무위키) 이에 따라 교통정체가 해소되길 바란다.


다음 글로는 1970~80년대 우리나라 수출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던 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자 금천 순이의 집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과 G밸리 산업박물관에 방문하여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이분들의 피땀 눈물로 인해 현재의 나는 편하게 일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참고 자료 및 출처: 금천구청 홈페이지, 금천 30년사(1995-2025). 1, 나무위키, 서울데이터허브 서울시 수출실적 금천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