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마을 기록관

옷으로 말하는 계절

옷으로 말하는 계절

패션 -

 

| 김서정

 

작년 여름, 집 근처 시장을 걸어가던 어느 날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다. 좁은 골목길은 한낮의 열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고, 좌판 위의 복숭아와 자두는 햇빛에 반짝이며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 길 위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꽃무늬가 가득한 얇은 원피스를 입고 팔에 장바구니를 걸친 채 성큼성큼 걸었고, 옆집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검은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또 멀리에는 양복을 벗지 못한 직장인이 땀을 훔치며 급히 지나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같은 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패션으로 여름을 살아내고 있다고.

여름은 언제나 무겁게 다가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뜨거운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웠고,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금천구의 여름은 도시의 여름이었다. 아스팔트가 낮 동안 머금은 열을 밤까지 내뿜었고, 골목 어귀마다 매미 울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여전히 사람들의 옷차림을 눈여겨보곤 했다. 같은 날씨 속에서도 누군가는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또 다른 이는 긴팔 셔츠를 단정히 여미고 있었다. 어떤 이의 발목은 샌들 속에서 시원하게 드러나 있었고, 또 다른 이의 발은 여전히 운동화 속에 갇혀 있었다. 같은 하늘, 같은 공기 속에서 각자의 계절을 다르게 살아내는 풍경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마치 사람마다 다른 시간대를 사는 듯 보였다.

금천의 패션은 그렇게 늘 계절과 사람의 사정을 동시에 입고 있었다. 동네 놀이터 앞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반바지와 형형색색 티셔츠는 여름의 끝자락을 알렸고, 아파트 단지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의 흰 런닝과 헐렁한 바지는 오래된 여름의 습관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마치 작은 패션쇼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런웨이는 없었지만, 땀에 젖은 셔츠와 바람에 흩날리는 원피스, 운동화와 샌들, 그 모든 것이 계절의 증거였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달랐다. 혼자가 된 집, 고장 난 선풍기 대신 작은 탁상용 선풍기를 들여놓고 버티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옷차림에 더 많은 시선을 주게 되었다. 외출할 때마다 나는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사람들의 패션을 확인하는 일이 일과처럼 되었다. 오늘은 몇 명이 반팔을 입었는지, 혹은 누군가 벌써 긴팔을 꺼내 입었는지 세어보곤 했다. 때로는 그들의 선택이 계절보다 앞서 있거나, 혹은 뒤쳐져 있는 듯 보였다. 날씨보다 사람의 몸이 먼저 느끼는 계절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왔다.

9월이 되고 나뭇잎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공원 산책로를 걸으면 나무들은 조금씩 갈색과 노랑을 뒤섞어가고 있었고, 사람들 또한 각자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여전히 반바지를 고수하는 사람 옆에, 이미 두꺼운 후드티를 걸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산책 나온 개들도 옷을 입었다. 어떤 개는 여름용 얇은 민소매 옷을, 또 어떤 개는 벌써 가을 색상의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사람과 자연과 동물 모두가 저마다의 옷을 통해 계절을 받아들이는 거대한 무대 같았다.

나는 그 장면들 속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나무가 잎을 갈아입듯, 사람들도 옷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일찍 입은 듯 낯설었지만, 그것 또한 계절을 살아내는 방식의 하나였다. 나는 아직 여름의 끝에 머물러 있었지만, 누군가는 벌써 가을을 입고 있었다. 그런 차이가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졌다. 계절이란 모두가 똑같이 동시에 건너가는 길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보폭으로 걸어가는 여정 같았다.

어느 날 저녁,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나는 공원에 나갔다. 아이들은 반팔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공원 벤치에 앉은 연인은 얇은 담요를 무릎에 덮고 있었다. 그 옆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청년은 긴 셔츠를 걸치고 있었는데, 셔츠 자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무 잎사귀들이 같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나무의 잎사귀는 같은 언어로 계절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붉게 물들어가는 잎사귀는 가을의 도착을 알렸고, 긴팔을 꺼내 입은 청년의 셔츠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올해 나는 여름을 홀로 견뎌 냈다. 식탁 위에 수박 대신 작은 그릇에 담긴 견과류 몇 조각만 올려두며, 가족과 함께 먹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혼자인 지금, 계절은 오히려 더 섬세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패션, 나무의 옷차림, 바람의 결 하나까지도 내 안에 깊이 남았다.

금천의 여름과 가을은 나에게 하나의 패션쇼처럼 기억된다. 런웨이는 시장 골목과 공원 산책로, 그리고 도서관 앞마당이었고, 모델은 그곳을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차이 덕분에 계절은 더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풍경 속에서, 혼자라는 감각마저 계절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과 자연이 각자 다른 옷을 입으며 만들어낸 이 무대는,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의 가장 진실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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