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의 꽃과 마음이 자라는 슈퍼 이야기
금천의 꽃과 마음이 자라는 슈퍼 이야기
글, 사진 | 김이안
지난번 금천체육공원에 다녀온 이후로 주변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니 동네 한 골목 안쪽에서 유독 눈에 띄는 가게 하나가 있었다. 간판에는 분명 ‘대성 슈퍼’라고 적혀 있었지만, 가게 앞은 꽃과 식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시선을 주게 되고, 자꾸 궁금해지는 그런 가게였다.
금천 청년 기록단 활동을 통해 인터뷰를 해야 했기에, 일을 마치고 바로 그 슈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중년의 남자분이 앉아 계셨는데, 인터뷰 요청을 드리자 식물은 안사람이 키우신다며 그분께 들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밖에서만 봤을 때도 식물 양이 많다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숲처럼 화분들이 가득했다. 일반적인 슈퍼보다는 생기 가득한 온실 같은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인 아주머니은 평일 오전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만 계신다고 했다. 직장인인 나는 평일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고, 처음 가게를 방문했던 5월 30일에는 결국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렵게 날짜를 조율한 끝에, 6월 14일 드디어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일정이 너무 많아서 인터뷰 약속을 깜빡 잊있다가 허둥지둥 찾아간 슈퍼에는 주인 아주머니께서 수줍게 맞아주셨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하자 주인분은 1992년부터 이 슈퍼를 운영해오셨다고 했다. 기존에 있던 슈퍼를 인계받아 시작했고, 그때는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 남편과 함께 24시간 평범한 슈퍼를 운영했고 한다. 남편과 교대로 하루 12시간씩 근무를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손자가 초등학생일 만큼 시간이 흘렀다고 하셨다. 슈퍼 운영은 이제 32년째지만,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본인도 몰랐다고 하셨다. 지금은 예전처럼 물건이 많이 팔리는 시대는 아니고 어느 날부터 물건이 빈자리에 집에서 키우던 식물들을 하나둘 슈퍼로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게 쌓이다 보니 지금처럼 가게 안팎이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해졌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이야기 중에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새순이 올라올 때 마음이 정말 행복해진다’는 말에서 식물을 좋아하는 진심이 전해졌다. 처음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건 32년 전, 8년 만기 적금을 타면서였다고 한다.그때 작은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던 3잎짜리 식물을 시작으로 호야와 문주란을 키우게 되었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 둘은 남아 있지 않다. 식물을 계속 키우다 보니 오가는 손님 중에 화분을 사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생겼는데주인분은 처음에는 혹시 죽이면 어쩌나 걱정이 커서 팔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간곡히 부탁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결국 소정의 금액을 받고 식물을 판매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특히 오래 키운 첫 식물을 팔 땐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그 실물들을 사고 싶다고 한 손님은 전에 다른 식물도 여기서 샀었고 집 사진도 보여주면서 정말 소중히 키우겠다고 하셔서 결국 시집보낸다는 마음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한 듯 주인분이 눈물을 훔치셨다.
사실 식물을 슈퍼에서 판다고 하면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지만, 이웃들이 오히려 먼저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한다. 판다는 안내 종이도 코팅해서 만들어주고 뭐라고 따지는 사람 있으면 자기한테 전화하라고까지 하는 이웃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건, 이 슈퍼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웃들이 서로를 챙기고, 작은 정을 주고받는 동네의 중심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식물을 처음 키워보는 분들이 관심을 보이면, 꺾꽂이로 일부를 잘라서 그냥 나눠주기도 하신다고 한다. 한 계절이라도 두고 보면 좋다고 키우는 방법도 직접 알려주신다고 했다. 동네 어르신 중에는 식물을 구경하는 겸 몸을 움직이는 겸해서 자주 들르시는 분도 계시는데, 가끔 오래 안 보이면 걱정이 되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슈퍼가 작은 노인복지센터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가게 옆에는 조그만 수족관도 있었는데 식물뿐만 아니라 생명 있는 건 뭐든 키우는 걸 좋아하신다고 했다. 무엇이든 애정을 담아 키우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인터뷰를 하며 자연스럽게 지난 이야기들이 떠오르신 듯 주인분께서 살짝 눈물을 보이셨고, 나도 울컥했다.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 무엇인지 여쭤봤더니, 호야를 가장 아낀다고 하셨다. 그냥보면 초록잎에 흰 테두리가 있는 평범한 식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 부분이 은근히 붉은 빛을 띄기도 하고 다 달라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어제 담배를 사고 돈이 부족했던 분이 남은 금액을 결제하러 온 손님이 들어오셨다. 돈을 나중에 받는 일도 있냐고 물어보니 주인분은 꼭 사야 하는데 500원 없으면 나중에 갖다 달라고 하고 물건을 드릴 때도 있다 하셨다. 까먹고 안오시는 분도 있지만 이렇게 다시 찾아와주는 손님이 있는게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손님은 그 김에 담배 한 갑을 더 사가셨다. 정말 따뜻하게 슈퍼를 운영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슈퍼 주변의 식물이 궁금해서 시작한 인터뷰였지만 이 슈퍼와 주인분의 인생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이 가게가 단순한 슈퍼가 아니라 동네의 온기를 품은 작은 정원처럼 느껴졌다. 따뜻하고 기억에 남는 공간이 생겼고, 덕분에 이 동네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