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마을 기록관

금천 체육공원에서의 밤 산책

 

서울에 올라와 금천구에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6년이 넘었다. 처음엔 직장 때문에 필요에 의해 올라왔고, 동네에 대한 애정이나 흥미는 딱히 없었다. 운동을 할 땐 근처 체육관이나 필라테스 센터만 이용했고, 산책이 필요할 땐 집 앞 마트나 대형 쇼핑몰을 한 바퀴 도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 내가 금천 체육공원에 가게 된 건, 순전히 금천 청년 기록단 활동 덕분이었다. 숙제처럼 주어진 과제였지만, 덕분에 처음으로 동네를 다르게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밤 늦은 시간, 문득 기록물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도 좀 움직일 겸 산책을 할 겸해서 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제법 선선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발걸음이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조금 벗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에 가보게 되었다. 처음 보는 골목과 낯선 가게들,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 보니 괜히 여행 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다 보니 생각보다 높은 경사와 계단을 지나야 했다. 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찼고 자주 오긴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공원을 둘러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교적 평탄한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처음 가보는 길이란 게 늘 그렇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나쁘진 않았다.

계단을 다 올라가 공원에 도착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리고 전망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낮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평범한 동네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마을 불빛들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 순간 달과 비행기, 그리고 마을의 조명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면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시간 내서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금천 체육공원에 대해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았을 때, 특이한 조명 시설이 있다는 정보를 보고 왔다. 그런데 공원을 둘러보는 동안 그 조명들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했었다. 혹시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조금 더 돌아가보니 내가 처음 왔던 쪽 반대편 방향에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감천로 별빛다리 위에 있는 별자리 조명이다. 12개월 별자리를 상징하는 조명이 다리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이 하늘의 별과 겹쳐져 보이니 꽤나 인상 깊었다. 마치 진짜 별자리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한참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내 별자리를 찾아 사진도 찍어보았다. 다음에 날씨가 더 맑고 별이 잘 보이는 날에는 하늘과 조명을 번갈아 보며 진짜 별자리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만, 다리가 제법 높고 개방된 구조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 머물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별빛다리를 지나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또 다른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음악을 테마로 한 조명들이었다. 하프, 트럼펫, 섹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의 형태를 한 조명들이 서 있었고 모두 중절모를 쓰고 있어서 마치 밤의 재즈 밴드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는 하프와 첼로를 연주하는 포즈를 취할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밤 산책길에서 마주한 이 조명들은 단순한 장식 이상으로 느껴졌고,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면 정말 완벽한 무드가 완성될 것 같았다. 다음에 이 길을 다시 걸을 땐 꼭 이어폰을 챙겨서 클래식 음악과 함께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산책은 아주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동안은 이미 익숙해진 공간이 있었고 바쁘기도 해서 주변에 새로운 공간을 가볼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어릴 떄 심심하면 주변에 새로운 곳을 탐험했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지만 작은 계기로 내 생활 반경을 넓혀볼 수 있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숙제때문에 시작했지만 덕분에 밤 공원도 즐기고 개운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그 뒤에 주변을 좀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새 맛집이나 인터뷰를 하고 싶은 가게도 발견했기 때문에 공원 산책은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바쁘게 살다보면 또 이 기분을 잊고 다니던 곳만 다니게 될 수 있지만 지금 날씨 좋을 때 동네를 산책하는 좋은 습관을 길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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